[민속의 재발견] 너랑 꼭 닮은 애 낳아서 키워 봐라 게시기간 : 2025-12-03 07:00부터 2030-12-24 21:21까지 등록일 : 2025-12-01 17:57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민속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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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학은 과거 우리 선조들이 살아온 삶을 살펴 오늘날의 모습과 비교해 보고 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해 보는 학문이다. 선조들의 삶은 이야기, 노래, 의례, 놀이, 신앙 등에 전승되는 기억의 역사이다.”
1. 생명을 품다 : 잉태(孕胎) 고려 후기 승려 일연(一然 : 1206~1289)이 편찬한 《삼국유사(三國遺事)》 기이편(紀異篇)에는 고조선의 제1대 왕인 단군(檀君)의 기록이 전한다. 단군은 하느님 환인(桓因)의 여러 아들 중 하나인 환웅(桓雄)과 곰이 변해 여자가 된 웅녀(熊女) 사이에서 태어나 평양성(平壤城)에 도읍을 정하고 조선을 건국한 인물이다. 관련된 내용의 한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삼칠일(三七日)만의 곰은 여자의 몸이 되었으나, 호랑이는 금기를 지키지 못해 사람의 몸이 되지 못하였다. 웅녀(熊女)는 혼인할 사람이 없었으므로 매양 단수 아래서 잉태하기를 빌었다. [환]웅이 이에 잠시 [사람으로] 변하여 그녀와 혼인하였다. [웅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니 단군왕검(壇君王儉;檀君王儉)이라 하였다. (三七日熊得女身, 虎不能忌而不得人身. 熊女者無與爲婚故每於壇校勘樹下呪願有孕. 雄乃假化而㛰之. 孕生子號曰壇君王倹)”
<《三國遺事》, 古朝鮮王儉朝鮮> (밑줄 필자)
밑줄 친 부분만 보자면, 여인(女人)이 된 곰이 단수(壇樹;檀樹) 아래에 와서 아이 갖기를 기원하고, 이에 환웅은 사람으로 변하여 곰과 혼인을 한 후 아이를 낳는다. 짧은 내용이지만, 많은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웅녀는 나무에 의탁(依託)하여 아이를 갖고자 하는 소망을 기원한다. 이에 신(神)은 사람으로 변하여 먼저, 부부가 되는 의례를 갖춘다. 그런 다음에 아이를 낳는다. 혼인이라는 과정을 거쳐 아이를 갖는다는 점, 그리고 잉태(孕胎)를 하늘에 기원하는 점 등은 많은 생각거리를 만들어낸다. 옛사람들은 혼인하고 나서 아이를 잉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여겼던 듯 보인다. 결혼할 대상이 없었던 웅녀가 아이 갖기를 소망한 것은 남편이 될 존재를 달라는 의미로도 읽힌다. 그런데, 혼례를 하면 자연스레 아이를 가질 수 있게 된다는 의미로도 보인다. 하지만, 아이를 갖는 그 자연스러운 일은, 어쩜 신이 허락해야만 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웅녀가 나무 밑에서 정성을 다해 신에게 자신의 소망을 기원한 것을 보면 말이다. 이는 일종의 기자치성(祈子致誠)으로, 초월적인 힘을 지닌 존재의 힘을 빌려 아이를 낳고자 한 행위로 보이며, 수목숭배의 한 형태이다. 이처럼 아이 갖기를 기원하는 것을 기자의례(祈子儀禮) 또는 기자풍속(祈子風俗)이라고 한다. 이때의 자(子)는 ‘아이’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후대로 내려오면서 ‘아들’의 의미가 더 커졌다. “품팔아 모은 재물로 온갖 공을 다 들였다. 명산대찰 영신당과 오래된 사당과 성황당이며, 여러 부처님, 보살님과 미륵님께 찾아다니며 칠성불공, 나한불공, 제석불공, 신중마지, 노구마지, 탁의시주, 인등시주, 창호시주 갖가지로 다 지내고, 집에 들어 있는 날은 조왕 성주 지신제를 극진히 드렸더니, 공든 탑이 무너지며 심은 나무가 꺾어지겠는가 (품파라 모든 ᄌᆡ물 왼갓 공 다들인다. 명산ᄃᆡ찰 영신당과 고뫼츙사 성황사며, 제불보살 미역임과 칠셩불공, 나한불공, 제석불공, 신즁마지, 노구마지, 탁의시주, 인등시주, 차오시주 갓갓지로 자지ᄂᆡ고 집의 들리잇난 날은 죠왕셩주 지신제를 극진이 공드리니 공든탑이 무너지며 심든남기 ᄭᅥᆨ거질가)”
<가람본 《심청전》 중에서> “(충청도) 진천 풍속에 3월 3일부터 4월 8일까지 여인들이 무당을 데리고 우담(牛潭)이라는 연못가에 있는 동서 용왕당(龍王堂)과 삼신당(三神堂)에 가서 아들을 점지해 달라고 비는데, 그 행렬이 끊어지지 않고 사방의 여인들이 모두 와서 기도하므로 마치 장을 이룬 것 같다. 해마다 이러한 일이 늘 벌어진다. (鎭川俗自三月三日至四月八日女人率巫 祈子於牛潭上東西龍王堂及三神堂 絡續不絶 四方女人亦皆來禱而觀者如市 歲以爲常)”
<《東國歲時記》, 三月 三日> 《심청전》의 곽씨부인은 명산대천의 영신당과 성황사, 그리고 석불과 미륵뿐만 아니라 조왕 및 성주 등의 가택신 등에게 공을 들여 ‘심청’을 얻는다. 《동국세시기》는 1849년(헌종 15)에 썼다고 추정되는데, 그 내용을 보면 ‘남아선호’ 의식과 ‘무속적 방법’의 ‘기자신앙 행위’가 성행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처럼 혼인한 부부가 아이를 잉태하지 못하면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를 잉태하고자 노력하게 된다. 먼저, 잉태가 되지 않은 원인을 살펴 이를 해결하고자 노력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익모초나 구절초를 달여 먹는 것이다. 1871년 금리산인(錦里散人)이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의휘(宜彙)》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 있다. “월경이 고르지 못하여 배가 아프고 수태가 되지 않을 때는 단옷날에 익모초의 연한 잎을 채취한 다음 찧어 즙을 내고 큰 동이에 담아 중간 불로 졸여 고를 만든다. 여기에 당귀 가루 3홉, 천궁 가루 2홉을 넣고 소도만 한 환을 만드는데, 많을수록 좋다. 반드시 월경이 고르게 되고 임신하게 된다 (經後不調, 腹痛, 不能受胎, 端午日, 取益母艸軟葉, 擣取汁, 盛于大盆, 文武火煎成膏. 入當歸末三合, 川芎末二合, 作丸小豆大, 多多益善. 必調經而孕)”
<《宜彙》 卷之二, 婦人, 求嗣, 經不調不能胎> “배가 차가워 태기(胎氣)가 없을 때는 구절초 1부(負) 정도를 물에 달여 복용한다 (腹冷無胎氣, 九節草限一負, 煎服)”
<《宜彙》 卷之二, 婦人, 求嗣, 腹冷無胎> 위의 내용을 보면 익모초나 구절초 등의 약초를 먹어 생리불순과 냉증 등을 다스림으로써 잉태가 가능한 조건을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주술적인 힘을 이용하여 아이가 생기길 소망하는 노력도 한다. 대표적인 것으로 치성을 드리는 방법이 있다. 이는 산신이나 용신, 삼신, 칠성, 부처(또는 미륵) 등의 신격과 암석, 신목 등의 자연물을 신앙의 대상으로 한다. 개별적으로 비손을 드리기도 하고, 무당 등을 불러 굿을 하기도 한다. 특정한 약물이나 음식물을 복용하기도 한다. 아이를 낳은 산모의 첫국밥을 얻어먹거나, 동쪽으로 뻗은 배롱나무 가지와 수탉을 같이 달여 먹기도 한다. 또는 석불의 코를 갈아 마시기도 한다. 부적 등의 특정한 물건을 몸에 지니는 방법도 있다. 다산(多産)한 여인의 속옷이나 월경대를 몸에 두르고 다니기도 하고, 작은 도끼를 착용하는 것이 그것이다. 성기(性器) 모양의 바위나 돌, 또는 나무 등에 일정한 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다. 남근석(男根石)이나 여근석(女根石) 등에 비손하거나 굿을 하기도 하고, 바위 표면을 돌로 갈아 오목하게 파놓고, 돌을 붙여주기도 한다.
아이를 잉태할 조짐이 보이면 이를 미리 알려주는 꿈을 꾸기도 하는데, 이를 태몽(胎夢)이라 한다. 태몽은 태아와 각별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믿어지는데, 아이의 잉태 가능성을 암시하기도 하고, 아이의 성별이나 장래 운명 등을 미리 알려주는 것이라 여긴다. 태몽은 주로 태아의 어머니에게 나타나지만, 때로는 태아와 가까운 친척 등이 꾸어주기도 한다. 꿈이 미래에 일어날 사건이나 모습 등의 운명을 예시한다고 믿는 심리적 태도에 따른 것이다. 꿈의 형상을 풀이하여 미래의 상황에 알고 미리 대비하려고 하는 것은 무속이나 점복신앙(占卜信仰)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아이를 잉태하면 태아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하여 말과 행동, 그리고 마음가짐 등을 조심하게 되는데, 이를 태교(胎敎)라고 한다. 아울러 태어날 아이를 위해 음식도 가려 먹었다. 예를 들면 상갓집이나 제사 음식은 부정탄다고 하여 먹지 않으며, 손과 발가락이 오리처럼 된다고 하여 오리고기를 먹지 않는 것 등이 그것이다. 이는 잉태한 태아를 하나의 생명으로 인정하여, 무사히 태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2. 아이를 기르다 : 육아(育兒) 병원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대부분인 지금과 달리 과거에는 자기 집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다반사였다. 따라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장소와 필요한 물품 등을 미리 준비하고, 장만하여 두어야 한다. 임산부가 기거하던 방이나 안방을 산실(産室)로 만들었는데, 이때는 ‘삼신짚’이라 하여 깨끗한 볏짚을 방바닥에 깔았다. 아이를 낳을 때 나오는 피와 분비물 등을 볏짚으로 받아내는 실용적 용도로도 사용되었고, 볏짚이 지닌 생장력(生長力)으로 순산을 유도하는 상징적 의미도 지녔다. 또한 수건이나 가위, 배냇저고리 등의 출산용품을 따로 장만하였다. 이때 빠지지 않고 준비해야 하는 것이 미역이다. 조선 후기의 학자 청성(靑城) 성대중(成大中, 1732~1809)이 지은 《청성잡기(靑城雜記)》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전한다. “어미 고래는 새끼를 낳을 때가 되면 반드시 미역이 많은 바다를 찾아 실컷 배를 채우는데, 먹이를 탐하여 비좁은 물길로 들어갔다가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는 경우도 많다. 이것이 바다의 큰 물고기가 주는 교훈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산모가 미역의 도움을 받는 것 역시 고래에게서 얻은 교훈이다. (鯨母將産 必擇藿 港餌充其肚 貪餌入隘 不得出而斃者亦多 海大魚之爲戒 此其一也 然産之藉藿 亦以此)”
<《靑城雜記》, 卷之五, 醒言> ‘어미 고래의 교훈’이라는 글로 우리나라에서 산모가 출산 후에 미역국을 먹게 된 이유를 짐작하게 하는 내용이다. 아이를 낳으러 산실로 들어가는 산모는 살아서 신발을 다시 신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신발코가 마당 쪽으로 향하게 두었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아이 낳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기에 출산 경험이 많은 이를 산파(産婆)로 두어 이이 낳는 일을 돕게 하였다. 아이를 낳으면 태를 자르고, 아이의 건강을 살폈다. 태반이 나오면 깔았던 짚자리와 함께 묶어두었다가 후에 처리하였다. 출산을 전후로 산실에는 삼신상을 차린다. 삼신은 아이를 점지해 주고, 아이의 양육과 산모의 건강을 관장한다고 믿는 신이다. 삼신상에 올리는 제물은 쌀(밥), 미역(국), 실타래, 정화수 등인데, 여기에 차린 쌀과 미역국으로 산모에게 첫국밥을 끓여준다.
아이를 낳으면 대문에 금줄(혹은 인줄)을 친다. 볏짚 두 가닥을 성인 남자 새끼손가락 정도의 굵기로 왼 새끼줄을 꼬아 만든다. 새끼줄 사이에는 다른 물건을 꽂아 태어난 아이의 성별을 알리기도 한다. 즉, 사내아이이면 숯덩이와 빨간 고추를, 계집아이이면 작은 생솔가지와 숯덩이를 간간이 꽂는다. 이 금줄은 태어난 아이의 성별을 알리는 구실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출입을 금하게 하는 구실도 한다. 혹시 모를 전염병이나 부정 등을 미리 방지하고자 함이다.
쌍둥이에 사회문화적 인식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리 나타난다. 쌍둥이의 비일상성을 강조하여 신성한 존재로 보기도 하고, 보편적인 인간의 출산 방식에서 벗어난다고 하여 금기시하기도 한다. “예조(禮曹)에서 아뢰기를 ‘경기의 금천에 사는 사노(私奴) 복만의 아내인 양녀 춘덕과 충청도의 한산에 사는 선군(船軍) 최중의 아내인 양녀 귀비 등은 모두가 한꺼번에 아들 셋을 낳았으니, 청컨대 전례(前例)에 의하여 각각 쌀과 콩 아울러 10석(石)씩을 내려 주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禮曹啓 ‘京畿 衿川居私奴卜萬妻良女春德 忠淸道 韓山居船軍崔衆妻良女貴非等 皆一産三子 請依例各賜米豆幷十碩’ 從之)”
<《成宗實錄》, 七年 十一月 十八日 戊午> 위의 기록을 보면 세쌍둥이를 낳았을 때 국가에서 일정 비용을 하사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나 ‘전례에 의하여〔依例〕’라는 기록을 보면 이미 그러한 사례가 많았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실제로 조선시대 내내 세쌍둥이를 낳았을 때 국가에서 일정 곡물을 하사한 사례는 빈번하게 나타난다. 반면 민간에서는 쌍둥이의 출산을 부정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였다. 화순지역에서는 쌍둥이가 태어나면 아버지 되는 사람이 지붕 위에 올라가 ‘개새끼 낳네’라고 소리를 질렀다. 쌍태(雙胎)는 동물이나 낳는 것으로, 인간의 삶에서는 비정상적이라는 의식을 드러낸 사례라 할 수 있다. 한 곳에 태아가 둘 있으면 상대방의 복을 빼앗아 간다고 인식하였기 때문에 쌍둥이 남매가 태어날 때는 다음 이야기처럼 여아(女兒)를 배제하는 극단적 모습까지도 보인다. “그 둘이가 살었는디, 거기두 남매 쌍둥이, 오나가나 남매 쌍둥이믄, 한 집안에 장수가 둘 나오므는 역적질 헌다구 하나가 죽어야 허잖유. 그것이 운명이유. 집안 가문을 잇기 위해서는 하나가 죽어야 하니까. 거기에서두 뭐여 여자가 하나 죽게 되잖유. 부모 입장에서는 여자는 시집가믄 그만이지, 가문을 못 잇잖어. 남자 성을 따라야 하니까.”
<『한국구전설화집』, 10, ‘남매장수의 내기와 묘순이 바위(1)’> 아이가 태어나면 많은 행위가 수반되는데, 대표적인 것이 수유(授乳), 작명(作名), 백일, 돌 등의 의례이다. 아이에게 먹일 젖이 부족하면 돼지족발을 고아 먹는 등의 식이요법을 통해 해결하기도 하였고, 샘이나 우물 등에서 물을 뜬 다음 바가지나 병에 담아 물을 조금씩 흘리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행위를 취하기도 하였다. 이 행위는 일명 ‘젖 타오기’라는 것으로 용왕에게 산모의 젖이 우물물처럼 잘 나오기를 기원하는 의례이다. ‘작명’은 대부분 집안 어른이 항렬(行列)에 따라 지어준다. 자손이 귀한 집에서는 항렬과 다르게 짓기도 하고, ‘똥개’처럼 천한 이름으로 불러 장수를 기원하기도 하였다. 아이가 자라 100일째 되는 날이 ‘백일’인데, 여유가 있는 집은 백일 떡을 만들어 이웃집에 돌린다. 아이가 태어난 지 만 일 년이 되는 날을 ‘돌’이라고 한다. 이날은 아이가 처음 맞이하는 생일이기에 큰 상을 차려 축하하였다. 아울러 상에 놓인 물건 중에서 아이가 가장 먼저 잡는 것을 보고 아이의 장래를 점치는데, 이를 ‘돌잡이’라고 한다.
육아 과정에서 점을 봐 아이의 명이 짧거나 사주가 좋지 않으면 신이나 자연물 또는 사람을 수양부모로 정하여 아이의 수명장수를 비는 의례를 행하기도 한다. 일명 ‘아기 팔기’라고 하는 것이다. “연로의 여관집 주인들이 왕왕 자기들의 자녀들을 우리나라 역졸들에게 주어 부자(父子)의 의를 맺도록 하는 수가 있다. 여러 역관 중에도 역시 <이 같은 부자의 의를 맺은 사람이> 더러 있는데, 그들이 서로 만날 때 보면 은혜와 사랑이 매우 흡족해 보였고, 그 집에서는 반드시 술과 안주를 갖추어 대접하였으며, 그 아버지 된 <우리나라> 사람은 또한 반드시 우리나라 토산물을 선물로 주었다. 대개, 이것은 어린아이들의 액(厄)막이를 하기 위한 것으로, 우리나라의 아이 파는 풍속과 같은 것이다. (沿路店主 往往以子女 許與我國驛卒 托爲父子 諸譯亦或有之 其相見恩愛相洽 其家必備酒饌以待之 爲其父者 亦必以土物賞之 盖爲幼兒度厄 如東人賣兒俗也)”
<《湛軒書外集》, 卷八 燕記, ‘沿路記略’> 담헌(湛軒) 홍대용(洪大容, 1731~1783)의 《담헌서외집(湛軒書外集)》에 있는 내용이다. 1765년 홍대용이 연경을 다녀와 기록한 것으로, 어린아이를 위한 액막이 풍속에 관한 것이다. 그런데 그 풍속이 ‘우리나라의 아이 파는 풍속(東人賣兒俗)’과 같은 것이라고 하였다. 조선시대에 아이 팔기 풍속이 널리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는 대목이다. 아이를 파는 대상은 자연물, 신, 무당, 다복한 사람, 스님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아이를 판 후에는 연중 특별한 세시마다 아이 판 곳을 찾아가 수명장수를 비는 치성을 올리기도 하고, 아이를 판 날이나 아이의 생일에 그곳을 찾는 경우도 있다. 전문 의료시설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성인보다 상대적으로 면역력이 약해 어린아이나 영아의 사망률이 놓았다. 이러한 까닭에 아이가 건강하고 무탈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다양한 행위들이 아이를 기르는 동안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3. 어른이 되다 : 혼인(婚姻)
《삼국유사》에 전하는 신라 향가 <서동요(薯童謠)>이다. 훗날 백제 무왕(武王)이 되는 서동(薯童)이라는 인물이 선화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부른 노래다.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얼어두고 맛둥 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정도로 해석될 수 있다. 여기서 ‘남몰래 어르다’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사통하다” 혹은 “성관계를 맺다” 정도로 풀이한다. 여기서 보듯이 ‘어르다’의 변형된 모습이 ‘어른’이다. 그러므로 ‘어른’은 혼인을 해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즉, 혼인을 해야만 어른이 될 수 있으며, 아이를 낳을 수 있을 때 혼인할 수 있는 것이다. 혼인(婚姻)은 한 쌍의 남녀가 사회가 인정하는 절차에 따라 결합하여 부부가 되는 제도와 의식을 말한다. 혼인을 통해 부부로 결합한 신랑과 신부는 가정을 꾸리고 후사를 출산하여 사회 구성의 기초가 되는 가족을 이룬다. 옛날에는 나이가 많아도 혼인을 하지 않으면 아이 취급을 했기 때문에 혼인을 계기로 비로소 사회적 성인으로 인정받았던 셈이다. 아울러 신랑은 사위, 신부는 며느리의 지위로 각각 상대 집안의 일원이 되기 때문에 혼례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닌 집안끼리의 문제가 되기도 한다. 대개 혼기에 이른 자녀가 있는 집에서는 일가친척이나 마을 사람, 방물장수 등을 통해 혼담을 나눈다. 혼담은 마을 내, 마을과 마을, 지역사회, 정기시장 등에서 오고 가며, 이 과정에서 서손(庶孫), 요절(夭折), 수익사(水溺死), 호식(虎食), 폐병, 나병, 집안의 우애 여부, 당사자의 인품과 행실 및 건강, 경제력 등을 두루 살펴 혼처를 찾았다. 두 집안에 혼담이 오가면서 혼인 관계를 맺도록 하는 데 주된 역할을 하는 이들을 ‘중매인(中媒人)’, ‘중매쟁이’, ‘중신애비’ 등으로 부른다. 혼인할 만한 적당한 대상자를 찾으면 혼인 당사자의 궁합(宮合)을 보고 남자 집에서 여자 집에 중매인을 보내 혼인할 의사가 있음을 알린다. 이때 신랑 집에서는 청혼서(請婚書)를 보내고, 신붓집에서는 허혼서(許婚書)로 답한다.
혼례 날짜는 일반적으로 여자 측에서 잡아 남자 측에 알려주며, 신랑집에 제사 등의 일이 있으면 상의하여 날짜를 새로 잡는다. 또한 부모가 혼인한 달에는 자식들이 결혼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해가 저물 무렵에 신랑이 신부의 집 문밖에 도착하여 자기의 이름을 밝히고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면서 아무쪼록 신부와 더불어 잘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청한다. (壻暮至女家戶外, 自名跪拜, 乞得就女宿)”
<《三國志》 魏書, 東夷傳, 高句麗> “옛날에는 혼가의 납채(納采)에는 옷 몇 가지만을 썼고, 혼례식 날 저녁에는 찾아온 종친들이 모여서 한 상의 음식과 술 두세 잔을 대접하는 것으로 그쳤다 (古者婚家納采 只用衣希小物 婚夕宗族來會者 只擎一盤行三杯而止耳)”
<《慵齋叢話》 卷之一> 위의 기록에서 보듯이 혼례식은 저물녘에 여자 집에서 치른 것으로 보인다. 혼례 날이 되면 남자는 신붓집으로 가는데, 이때 함을 짊어진 함진애비, 집안 어른인 상객(上客), 친구들인 하객이 함께한다. 혼례식은 신붓집 마당에 차려진 대례상 앞에서 이루어지며, 혼례식이 끝나면 신붓집에서 첫날밤을 치른다. 신붓집에서는 친척들이 모여 신랑을 다루며 노는데, 이를 ‘동상례(東床禮)’ 혹은 ‘신랑다루기’라 한다.
혼례식을 마친 신부가 시가(媤家)로 가는 것을 ‘신행(新行)’이라 하는데, 신랑집에 가서 시모부와 일가친척을 처음 뵙고 절을 하는 ‘폐백(幣帛)’을 드린다. 이때 신부는 장만해 간 이바지 음식과 선물 등을 전한다. 신랑 신부가 다시 신붓집으로 가는 것을 ‘재행(再行)’이라 하며, 일 년 농사를 지어 이바지 음식을 장만해 신붓집으로 가는 것을 ‘근친(覲親)’이라 한다. 신부가 혼례 후 시가로 바로 가지 않고, 한 달 또는 1년 이상을 친정에 머물기도 하는데, 이를 ‘묵힌다’라고 표현한다. 이 기간에 신랑은 신붓집을 여러 차례 방문하는데, 신부가 임신을 하면 시가로 가기도 하고, 따로 길일을 정해 시가로 가기도 한다. 신부가 집에 머무는 동안 신붓집에서는 철에 맞게 신랑 집에 이바지 등의 음식을 보내기도 한다. 4. 닮은 자식을 낳다 : 부모(父母) 우리나라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한 살을 먹는다. 이는 뱃속의 태아를 생명으로 인정하고, 이를 반영한 나이 계산법이다. 과학이 발전한 요즘에도 아이를 잉태하기 위해 구절초를 달여 마시거나 산천에 공을 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여전히 아이를 갖는 것은 하늘이 정한 몫인지도 모르겠다. 태어날 아이가 아들인지 딸인지도 초음파 검사를 통해 금방 알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태몽을 꾸고, 태몽에 따라 아이의 운명을 예지하기도 한다. 아이는 병원에서 낳고, 조리원에서 몸조리하는 요즘에도 여전히 미역국은 상에 오른다. 귀가 붙어 있는 산모용 미역은 일반 미역보다 몇 배의 가격에 판매된다. 예전에는 한 집에 한 명의 아이만을 두었다. 그러기에 늦게 아이를 낳은 사람은 자기 집이 아닌 다를 집에 가서 아이를 낳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여러 명의 아이가 한 병원에서 자라고, 어쩌다 한 번씩은 다른 집 아이와 바뀌는 불상사도 일어난다.
아이의 이름은 항렬에 따라 할아버지가 지어주시기도 하고, 항렬과 상관없이 부르기 쉽고 고운 이름을 따로 짓기도 한다. 태어날 때 몸에 있던 탯줄이 말라 떨어지면 도장 등으로 만들어 보관하기도 하고, 배냇머리로 붓을 만들어 기념하기도 한다. 여전히 ‘백일상’과 ‘돌상’은 차려지고, 매년 생일 때마다 미역국이 상에 오른다. 그런데 그 미역국은 정작 고생하여 낳은 엄마를 위한 것이 아니라 태어난 아이를 위한 것이다. 자식이 무탈하고,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한 부모의 마음이다. 결혼식 더 이상 신부 안마당에서 치르지 않는다. 대신에 예식을 할 수 있는 예식장에서 서양식 드레스를 입고 환한 대낮에 행한다. ‘결혼 날짜는 예식장이 잡는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바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다. “딱 너 닮은 애 낳아서 키워봐라” 말 안 듣는 자식에게 부모님들이 쓰는 말이다.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아니듯, 자식을 낳아봐야 부모가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자식 닮은 손주’를 할아버지, 할머니는 또 그리 예뻐하신다. 그래 너 닮은 애를 낳아보라고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도움받은 자료
《三國志》
《三國遺事》 《成宗實錄》 《湛軒書外集》 《靑城雜記》 《慵齋叢話》 《宜彙》 《東國歲時記》 《심청전》(가람본) 최운식, 『한국구전설화집』, 민속원, 2005. 국립문화재연구소, 『한국인의 일생의례』 전라남도편, 2010. 김성식 외, 『남도 민속의 세계』, 민속원, 2006. 김은정 외, 『전남의 민속문화』, 전라남도, 2011. 김자현, 「쌍둥이설화 연구」, 『남도민속연구』 제14집, 남도민속학회, 2007. 김준희, 「고전 콘텐츠에 나타난 여아(女兒) 배제 및 쌍둥이 남매 모티프의 변용 연구 - 만화• 드라마 <연모>를 중심으로」, 『한국고전연구』 제62집, 한국고전연구학회, 2023. 《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https://kyudb.snu.ac.kr/main.do) 《레디앙》(https://www.redian.org/), ‘어떤 믿음, 도끼부적과 벼락도끼’ 《스카이데일리》(https://www.skyedaily.com), ‘최태호의 맛있는 우리말 [63] 어른의 유래’ 《연합뉴스》(https://www.yna.co.kr/) 《우리역사넷》(https://contents.history.go.kr/) 《한국고전종합DB》(https://db.itkc.or.kr/) 글쓴이 박종오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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