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폭의 그림, 하나의 이야기]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석성 김형수의 <강강술래> 게시기간 : 2025-10-02 07:00부터 2030-12-24 21:21까지 등록일 : 2025-09-30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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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폭의 그림, 하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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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강술래 강강술래
산아 산아 추영산아 놀기 좋다 유달산아 강강술래 강강술래 꽃이 피면 화산이요 잎이 피면 청산이라 강강술래 강강술래 달 떠 온다 달 떠 온다 우리 마을에 달 떠 온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푸릇푸릇 봄 배추는 이슬 오기를 기다린다 술래가 돈다 술래가 돈다 무안강 술래가 돈다 강강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1) 며칠 후면 추석이다. 한가위, 중추절이라 부르는 이때는 날씨만 허락한다면 크고 밝은 보름달을 볼 수 있다. 여름처럼 덥지도 않고 겨울처럼 춥지도 않은 가장 알맞은 계절에, 환하게 빛나는 보름달 아래서 노래와 춤이 하나로 어우러진 강강술래는 추석의 대표적인 놀이문화이다. 동쪽 하늘에 보름달이 떠오르기 시작하면 여인들은 손에 손을 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며 선창자의 노래에 맞추어 느리게 발을 내딛고, ‘강강술래’하며 받는 소리를 한다. 처음에는 느린 가락으로 나아가다 노래가 빨라지고 춤도 빨라져서 나중에는 뛰는 것처럼 동작이 빨라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노래하고 춤을 추기 때문에 구성지고 활기찬 한마당을 이룬다. 석성 김형수 작가의 <강강술래>는 둥근 달이 뜬 밤에 한복을 입은 여인들이 달빛 아래서 손을 잡고 원을 만들며 강강술래를 하는 모습을 담았다(그림 1). 땋은 머리가 높이 찰랑이도록 뛰는 모습을 오직 먹의 농담만을 사용해 역동적인 필치로 담아낸, 흥겨움과 활기가 느껴지는 그림이다. 96세 노경(老境)의 화가 석성 김형수 석성(碩星) 김형수(金亨洙, 1929~ )는 전남 해남 출신의 광주 전통화단의 원로화가이다.2) 96세의 노경(老境)의 화가인 김형수에 대해서는 “남북 절충을 시도한 남화가”라든가 “독창적인 화풍을 완성한 한국화 대가”라는 평이 전하는데, 이는 그의 회화가 ‘전통적 필의’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화풍을 구현해 냈기 때문일 것이다. 김형수의 화업은 1942년 서울에 올라가 심산(心山) 노수현(盧壽鉉, 1899~1978)에게 2년간 전통화법을 배운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후 목포에서 허건에게 배우고 광주로 올라와 정운면 아래서 지도를 받았으며 허백련에게도 영향을 받았다. 노수현에게는 고격한 수법의 심의적인 내면성을, 허건에게는 전통화의 개성적이고 체험적인 시각의 풍경화를, 정운면에게는 전통화법에 신화풍을 더한 산수화를, 이와 더불어 허백련에게는 전통남종화의 정신을 배운 것이다. 이러한 여러 스승들의 가르침은 예술의 지경을 넓히며 김형수만의 독자적 화풍을 구축한 계기가 되었다.
![]() 그림 2 김형수, <할머니>,
![]() 그림 3 김형수, <꽃과 강아지>,
![]() 그림 4 김형수, <보리밭>, 김형수는 산수화를 비롯해 인물화, 소묘, 채색화 등 여러 장르의 다양한 작품을 제작하였다.3) 194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화업을 시작한 김형수는 1946-47년 전남미술전에 출품하여 입선을 하면서 화가로서의 기량을 드러내었다. 이때는 경남 함양 안의중학교 미술교사로 재직하던 때였다. 이 시기 작품들은 대체로 현실적인 채색표현을 통해 회화작업의 폭을 넓힌 과정을 보여준다. 작품의 주제도 작가의 주변을 대상으로 삼았다. <할머니>는 물레를 돌리고 있는 할머니와 그 옆에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를 포착하여 그린 것이다(그림 2). 할머니와 고양이, 물레 등 경물을 사실적으로 그리고, 대신 배경은 색면으로 단순하게 처리하였다. <꽃과 강아지>는 세 마리의 강아지가 복숭아꽃이 흩날리는 봄날 낮잠에 빠져 있는 모습이다(그림 3). 이 그림은 조선시대 영모화에 뛰어났던 종실 출신의 문인화가 이암(李巖, 1499∼?)이 그린 <화조구자도(花鳥狗子圖)>를 떠올리게 한다. 꽃이 핀 복숭아나무 아래에서 잠들어 있는 강아지의 모습을 정감어린 시각으로 담아냈다. <보리밭>은 진채를 사용하여 붉은색의 배경에 청보리와 나팔꽃을 꼼꼼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강렬한 화면구성을 보여준다(그림 4). 보리이삭과 나팔꽃의 덩굴 등 대상을 사실적으로 꼼꼼하게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탄탄한 데생력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초기작에서는 분채와 석채를 사용하여 제작하기도 하였는데, 이에 대해서 김형수는 일본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후술하기도 하였다.4)김형수는 스케치나 소묘작품들을 제작하면서 섬세하면서도 리드미컬한 선과 동적인 필선을 연습하고 활용하였다. 대상을 자세히 관찰하고 움직임을 포착하여 그려냄으로써 후에 인물, 정물, 동물, 풍경을 비롯한 그의 실경산수 작화의 기본 틀이 되었다.5) 1956년 광주에서 미술교사로 부임하면서 김형수는 그동안의 작품 제작 경향에 변화를 맞았다. 광주 전통화단의 경향과 정운면과 허백련 등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이다. 채색화에서 수묵담채화로, 그리고 전통적인 화풍과 현실적 시각의 향토적 산수화를 지향하게 되었다. 1950년대 후반 1960년대 제작된 산수화는 전통회화를 바탕으로 한 사실적인 한국의 자연미를 담은 작품들이다. <창경궁>과 <아진(雅陣)>은 수묵담채로 그려졌다. <창경궁>은 근경에 짙은 먹으로 구불거리는 나뭇가지를 표현하고 그 너머 창경궁을 클로즈업하여 그렸다. 먹의 농담을 살린 원근법을 통한 사실적인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10년 뒤 같은 장소에서 계절을 달리하여 그린 1968년작 <창경궁>과 함께 감상해도 좋을 듯하다. <아진>은 1962년 제11회 대한민국 미술 전람회(이하 국전)에 입선한 작품으로, 추수가 끝난 황량한 평원에 까마귀들이 휘돌아 날아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그림 6). 화면 전체에 모노톤의 색감과 먹의 농담으로만 표현한 까마귀의 모습은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화면구성과 표현기법을 보여준다.
![]() 그림 5 김형수, <창경궁>, 1958,
![]() 그림 6 김형수, <아진>, 1962,
![]() 그림 7 김형수, <곡>, 1969,
![]() 그림 8 김형수, <설악추심>, 1978, <곡(谷)>은 국전 입선작으로 화면 가득 쏟아지는 폭포와 깊은 산세를 그린 작품이다. 근경부터 원경까지 묵직한 바위들과 나무들이 교차하며 깊이감을 더하였다(그림 7). 전통적 필의를 사용하면서 초록색과 갈색의 채색을 조화롭게 구사한 표현법은 그의 다른 작품에서도 쉽게 찾아진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김형수의 화풍은 독자적인 양식으로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보인다. <설악추심>과 같은 작품들은 전통적인 화법으로 실경을 그린 것으로, 근경에서부터 원경으로 이어지는 구도에 짙은 먹을 사용해 근경의 경물을 그리면서 원경으로 갈수록 흐리게 그려 원근감을 나타냈다(그림 8). 특히 적절한 채색을 더해 가을 느낌을 뚜렷하게 표현하였다.
1980년대 이후 김형수의 화법은 더욱 농익은 필치로 그만의 스타일을 찾아갔다. 네 폭으로 구성된 사계 산수화인 <춘경산수> <하경산수> <추경산수> <동경산수>는 근경, 중경, 원경으로 이어지는 전통적인 화면구성을 보여준다(그림 9). 근경의 짙은 먹의 구사와 안개로 처리된 원근감, 그리고 다채로운 채색을 더하여 각 계절의 계절감을 살렸다. 관념산수에 가깝지만 초가집이나 물레방아 등은 향토적 정감의 현실감을 보여주며, 힘있고 명확한 골격을 이루는 먹과 필치는 그의 특징적인 표현성을 드러낸다. 육자배기 필의로 풀어낸 강강술래 김형수는 1950년대부터 시골 생활의 서정적 현실풍경을 꾸준히 화폭에 담아냈다. 우리네 민속과 놀이 등의 정경을 주제로 빨래터에서 빨래하는 여인들의 모습이나 강강술래, 농악놀이와 같은 풍속화류의 인물화를 즐겨 그렸다. 강강술래는 해남·완도·진도 등 전라남도 서남해 일대에서 성행된 놀이문화였다(사진 1). 어린 시절 김형수는 고향인 해남에서 동네 아낙네들의 강강술래하는 장면을 많이 보았다고 했다. 우리 고유의 정서와 리듬이 한데 어우러진, 그래서 리드미컬한 선과 동적인 필선을 연습하기 좋은 주제로서 일찍부터 펜이나 연필, 그리고 수묵으로 그리곤 했다(그림 10).
![]() 사진 1 <강강술래>, 1938년, 송석하 사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 그림 10 <강강술래>, 1961, 종이에 펜, 26×35cm 강강술래에 대해 무정 정만조의 『은파유필』에는 두 편의 시가 전해온다. 강강술래 관련해서는 가장 오래된 기록이라 한다.6 두 편 중 “이날 저녁에 걸어서 성 위에 이르러 강강술래 노래를 듣다(是夕步至城上 聞唱强强來曲)”는 당시의 강강술래의 정경을 시각과 청각이 어우러진 회화적 표현으로 담아내고 있다.
연한 색의 치마를 입은 여인들이 한데 모여 흩어졌다 모이고 둥글게 돌면서 조화를 이루고, 애잔한 가락의 노래가 더해진 강강술래가 끝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하는 여인들의 삶의 애환이 묻어난다.
![]() 그림 11 <강강술래>, 1985, 종이에 수묵담채, 70×103cm, 고려대학교박물관 이 시의 심상 그대로 그림으로 옮겨놓은 듯한 김형수의 <강강술래>는 밝은 달과 어스름한 저녁의 풍광을 배경으로 서로 손잡고 춤추는 소녀들의 모습과 육자배기 구성진, 소박하지만 흥겨운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8) 강강술래의 주제는 수묵채색화로 다시 한번 그려졌다(그림 11). 1967년에 수묵으로 그려진 그림과 거의 같은 구도이지만 아래쪽 양옆에서 구경하는 인물들을 화면 오른쪽으로 모아서 배치했다. 전체적으로 더 넓어진 화면구성을 보여준다. 채색을 더해서인지 화면은 더 밝아졌다. 춤을 추는 인물들의 동작은 더 정확하게 묘사되었으며, 농묵의 리드미컬한 필선으로 펄럭이는 치맛자락을 역동적으로 표현하였다. 댕기나 치마에 사용된 붉은색과 푸른색의 색채가 화면에 생기를 더해주며 신명나는 분위기를 고조시킨 정만조가 시로써 강강술래의 시각과 청각의 공감각적 이미지를 보여주었다면, 김형수는 그림으로써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생생한 현장감과 생동감을 표현해냈다.
김형수는 사실적이고 섬세한 표현에 능하고 다양한 실험적인 작품을 많이 다루는 등 독자적인 화풍을 구축했다. 강강술래 외에도 농악의 흥겨움을 그린 그림도 제법 많은데, <농악>은 소고와 장구, 꽹과리와 징을 치며 농악장단에 맞추어 상모를 돌리고 춤을 추는 한 무리의 농악대 모습을 속도감 있는 필치로 그려냈다(그림 12). 다가오는 추석, <강강술래>와 함께 감상해도 좋을 작품이다.
![]() 그림 12 <농악>, 1988, 종이에 수묵담채, 121×153cm 대담한 필치로 구현해 낸 석성스타일 김형수는 채색화에서부터 소묘, 전통화법에 현대적 시각을 담아 ‘석성스타일’이라 할 수 있는 화풍을 이룩했다. 농묵과 담묵의 변화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필법과 다채로운 담채의 구사, 대기감을 표현한 안개의 처리, 화면을 꽉차게 구성하는 방식 등은 김형수가 구현해 낸 개성적인 화법이다. 거기에 활달한 먹의 구사가 돋보이는 인물‧풍속화에 있어서는 다른 여느 화가들과의 차별성을 획득했다. 고답적인 화풍을 벗어나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한 그의 회화세계는 광주 전통화단에서 독창적인 화법을 개척해 현대적 감각을 선보였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南道美術100年作家選集』, 전라남도, 1995.
『碩星 金亨洙 素描集』, 도서출판 다지리, 2008. 『碩星 金亨洙』, 2009 광주시립미술관 올해의 작가, 광주시립미술관, 2009. 장수길 책임편집, 『碩星 金亨洙』, 한국미술작가선집, 현대미술연구소편, 1991. 박명희·김희태 역해, 『은파유필(恩波濡筆)』(정만조 저), 진도문화원, 도서출판 온샘, 2020. 김소영, 「석성 김형수, 전통의 탐구로 구현해 낸 ‘석성스타일’」, 『百花爛漫』(함평군립미술관, 2024, 48-51쪽. 문순태, 「김형수 화백의 삶과 예술세계」, 『碩星 金亨洙』, 2009 광주시립미술관 올해의 작가(광주시립미술관, 2009), 59-61쪽. 오병희, 『예술가열전 : 남도미술사』, 아시아문화커뮤니티, 2018. 이구열, 「전통적 筆意, 체험적 산수風景」, 『碩星 金亨洙』, 한국미술작가선집(현대미술연구소편, 1991), 8-24쪽. 장석원, 「金亨洙」, 『南道美術100年作家選集』(전라남도, 1995), 54-58쪽. 국가유산청 https://www.heritage.go.kr/heri/cul/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s://encykorea.aks.ac.kr 한국민속대백과사전 https://folkency.nfm.go.kr/topic/detail/3146 글쓴이 김소영 한국학호남진흥원 연구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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