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의 재발견]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이들 게시기간 : 2025-05-21 07:00부터 2030-12-24 21:21까지 등록일 : 2025-05-19 11:03
재단법인 한국학호남진흥원
민속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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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학은 과거 우리 선조들이 살아온 삶을 살펴 오늘날의 모습과 비교해 보고 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해 보는 학문이다. 선조들의 삶은 이야기, 노래, 의례, 놀이, 신앙 등에 전승되는 기억의 역사이다.”
1. 살아도, 죽어도 있는 생(生) 경상도 관찰사 김안국(金安國, 1478~1543)이 풍습을 교화하기 위해 중국의 왕지화(王至和)가 서문을 붙여 간행한 《정속편(正俗篇)》을 1518년(중종 13)에 한글로 번역한 것이 《정속언해(正俗諺解)》이다. 여기에 있는 〈목종족(睦宗族)〉(아와 화홈)에는 ‘자기 종이나 첩은 챙기면서 친척을 챙기지 못하면 조부모님도 저승에서 싫어해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라는 내용이 다음과 같이 담겨 있다. 제 고기 밥을 슬여 호 아자비 아도 주으려시며 고마 비단 깁을 니벗거든 아 벌거바삿니 이 다 하히 올히아니 너겨 한어버도 뎌애셔 필연 니마 긔오뒤 돕디 아니리라.
(자기의 종은 고기와 밥을 싫어하되 아저씨는 아침[朝飯]도 굶고 있으며 첩(妾)은 비단 깁(거칠게 짠 비단)으로 옷을 입었지만, 친척은 벌거벗었으니, 이는 다 하늘이 옳게 여기지 않고 조부모님도 저승에서 틀림없이 이마를 찡그리고 뒤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정속언해(正俗諺解)》
여기에서 ‘뎌’은 ‘저승’의 중세 국어 표기이다. ‘뎌’은 지시 대명사 ‘뎌(저)’와 한자어 ‘(生)’이 결합한 말이다. 이에 대립하는 ‘이승’은 지시 대명사 ‘이’와 한자어 ‘’으로 이루어진 말이다. ‘이’와 ‘저’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거리에 따라 쓰이는 말이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가까우면 ‘이’를, 둘 사이가 멀 때는 ‘저’를 쓴다. 즉, ‘이승’은 ‘이곳의 삶’을, ‘저승’은 ‘저곳의 삶’을 뜻한다. 따라서 ‘저승’이라는 말은 ‘멀리 떨어져 있는 또 다른 삶’을 의미하는 동시에 ‘죽어서 사는 생’이라는 뜻도 담겨 있다. 이승과 저승은 인간이 살았을 때 사는 공간과 죽었을 때 사는 공간으로 이해된다. 이승은 살아 있는 사람만이, 저승은 죽은 사람만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인 셈이다. 다만, 그 공간은 삶과 죽음의 명확성에 의해 결정된다. 인간은 호흡기관을 통해 공기를 들이마셔 끊임없이 몸속에 산소를 공급해 주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 만약 호흡기관이 제 몫을 못 하면 생명은 유지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목을 통해 쉬는 숨, 즉 ‘목숨’은 인간의 삶과 죽음을 가르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기에 우리 조상들은 고운 솜을 코나 입에 대어 호흡의 기운을 살피는 것으로 죽음을 확인하기도 하였다. 숨을 쉬느냐 못 쉬느냐는 생사를 결정함과 동시에 그들이 머무를 공간을 나누는 기준이 된다. 숨을 쉬면 이승에, 숨을 거두면 저승에 머물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공간이 온전히 단절된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이승과 저승을 오간 이들이 있으니 말이다. 2. 살아 저승에 다녀온 이들 살아 있는 사람이 저승에 다녀온 이야기는 경험담처럼 전해온다. 문헌으로 전하는 저승 체험의 대표적인 사례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하는 〈선율환생(善律還生)〉이다. “망덕사의 중 선율(善律)은 보시받은 돈으로 ≪육백반야경(六百般若經)≫을 이루고자 하였으나 공이 아직 이루어지기 전에 갑자기 명부의 쫓김을 받아서 저승에 이르렀다. 명사(冥司)가 묻기를 “너는 인간세계에서 무슨 일을 하였는가?”라고 하니 선율이 “빈도는 말년에 ≪대품경(大品經)≫을 이루고자 하였으나 공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왔습니다.”라고 하였다. 명사가 “너의 수록(壽籙)은 비록 다 되었으나 뛰어난 소원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마땅히 인간세계로 돌아가 보전을 완성하여라”라고 하고 곧 놓아 돌려보냈다. …… 선율이 그것을 듣고 바야흐로 가서 곧 소생하였는데 이때는 선율이 죽은 지 이미 10일이 지나 남산 동쪽 기슭에 장사 지내었다. 무덤 속에 있으면서 3일을 외쳤는데 목동이 그것을 듣고 절에 와서 알려주었다. 절의 중이 와서 무덤을 파내어 그를 꺼내주니 전의 일을 다 설명하였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선율환생(善律還生)〉
이 이야기는 선율 스님의 저승 체험담이라 할 수 있는데, 후대 저승 체험담의 기본형으로 간주 된다. 망덕사(望徳寺)의 스님인 선율(善律)은 반야경(般若經)을 완성하지 못하고 저승에 갔는데, 염라대왕이 다시 나가 사업을 완성하라고 하면서 놓아준다. 죽은 지 10일이 지나 무덤 속에 몸이 있어 사흘 동안 소리쳐 목동의 도움으로 살아나게 된다. 이야기 중간에 부모의 악행으로 붙잡혀온 여인의 부탁을 듣고 다시 살아 여인의 집에 가서 부탁한 바를 행하니 여인의 영혼이 찾아와 사례를 했다는 내용도 삽입되어 있다. 이 이야기에서 선율 스님이 다시 이승으로 돌아온 것은 반야경을 완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저승으로 간 이들이 이승으로 돌아오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합당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세속에 전하는 말에 어느 사람이 갑자기 죽으니, 귀졸(鬼卒)들이 잡아 음부(陰府, 저승)로 갔다. 명왕(冥王, 염라대왕)이 장부를 뒤져보다가 말하기를, “이 사람은 죽을 사람이 아니니 돌려보내도록 하라”라고 하고서 그 사람에게 다시 말했다. “너는 잘못되어 여기에 왔구나. 만일 네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내가 그것을 되도록 해주마”라고 하였다. 그 사람은 대답하기를, “산과 물이 아름다운 경치 좋은 곳에서, 입는 것, 먹는 것이 풍족하고, 평생 안락하게 살 수 있다면 이 밖에 달리 소원이 없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자, 염라대왕은 크게 웃으면서 말하기를, “만일 네 말대로 될 일이라면 내가 먼저 이 일을 하고 네게 빌려주지 않겠다. 벼슬자리는 얻을 수 있어도 이것은 얻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고 한다.”
(俗傳人有暴亡者 鬼卒押赴陰司 冥王按簿曰 此人不應死 可遣還. 仍謂其人曰 汝錯誤至此. 如有所欲 我爲成之 其人對以得佳山美水 使衣食豐足 一生安樂 他無所願也. 冥王大笑曰 若如爾言 我自爲之 不以假汝 官位可得 此則不可得也.) 《지봉유설》 권16, 해학. 1614년(광해군 6)에 이수광(李睟光, 1563~1629)이 지은 《지봉유설(芝峯類說)》 권 16 <해학(諧謔)> 편에 들어 있는 내용이다. 여기에서는 ‘아직 죽지 않을 사람을 잘못 잡아 왔기 때문’에 다시 이승으로 돌려보낸다. 그러면서 염라대왕이 소원을 물어본다. 경치 좋은 곳에서 걱정 없이 편히 지내는 것이 소원이라고 대답하자, 염라대왕이 웃으며 그렇게 좋은 곳이면 자기가 가겠다고 하였다. 익살스럽고 친근한 염라대왕의 모습도 함께 보여주어 웃음을 짓게 한다. 저승에 다녀온 경험담은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회자(膾炙)되고 있다. “전남 長興군 안량면 수문리에 長壽할머니가 살고 있었다. 蘇貞心 할머니. 기록적으로 오래 살았기때문에 장수할머니라고 불렀다. 69년 1백1살이 된 그 할머니가 12월 16일 드디어 숨을 거두었는데 그에 앞선 사흘 동안 이승에 많은 화제를 뿌려 놓고 갔다. 그것은 사흘 전의 13일 새벽 4시에 일단 별세한 것으로 생각되어 자손들이 초상 준비를 분주히 하고 있을 때 『염라대왕이 날짜를 잘 못 받았으니 도로 가라고 해서 돌아 왔다…』면서 되살아난 까닭이다. …〈중략〉… 『아이고 내가 날짜를 잘 못 받았다. 오늘은 초이렛날(음력)이지. 날이 나빠서 염라대왕이 다시 돌아 갔다가 사흘 뒤에 오라고 했다. 어서 나를 풀어다오』 …〈중략〉… 할머니는 우연인지 자기가 예언한 음력 10일(12월 16일)에 진짜로 고요히 한번 왔던 저승길로 다시 떠났다. …〈후략〉….”
〈101歲 할머니가 다녀온 저승애기〉, 《선데이 서울》, 제3권 1호.
위의 이야기는 1970년 1월에 발간된 《선데이 서울》에 실려 있는 기사이다. 전남 장흥에 살던 101세 할머니가 숨을 거두자, 자손들이 초상 준비를 하고 있는데, 8시간 만에 되살아난다. 염라대왕이 날짜를 잘못 잡아(혹은 잘못 알아) 다시 이승으로 돌아가 사흘 후에 오라고 하였는데, 예언대로 사흘 뒤에 숨을 거두었다는 이야기이다. 다시 이승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까닭은 날짜 계산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또 한 양반 돌아가셔 갖고 이제 사흘 만에 깨어났는디, 인자 바다 건너갈 때는 거네 이자 사자가 데고 강께 건너 갔죠 인자. 근데 인자 올 띠게는 ‘너 집으로 돌아가거라’ 긍께로 ‘안적 니가 올 나이가 아니다’ 긍께로 ‘어쩌고 가야?’ 항께 허건(하얀) 갱아지(강아지) 한 나를 주시더락 해. 라고 그 양반이 진짜 살아 갖고 이야기를 하시더라고 합디다. 옛날에 그 양반이 살아 나갔고 그런 야그를 진짜 했다고 그래. 근데 갱아지 한나 주니까 그놈 갱아지만 잡고 오니까 그 갱아지가 물을 건네서 타고 왔어. 그래서 보니까 깜빡 깨서 보니까 깨놨어요. 그 양반이 그래갖고 가서 이야기를 다 와서 하시더라고 한다고. 나도 그 사람들한테 일등이라도 들어놔서 그런 이야기도 진짜.”
〈저승 다녀온 사람〉, 《한국구비문학대계》 광주광역시. 위의 이야기는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에서 2018년에 조사된 것인데, 아직 죽을 나이가 아닌 사람을 잡아 왔기에 이승으로 되돌려 보내준다. 이처럼 이승으로 되돌아와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경우 저승 체험을 하게 되고 다시 이승으로 돌아와 남은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있는 이야기에는 이승으로 돌아오는 길을 인도해 주는 존재로 강아지가 등장한다. 저승에서 이승으로 돌아오는 길을 강아지가 안내해 주는 것은 일찍이 〈차사본풀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차사본풀이〉는 제주도에서 죽은 이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차사의 내력을 풀이할 때 부르는 노래(신화)이다. 여기에는 “염라대왕이 강림에게 흰 강아지를 따라 이승으로 돌아가라”라고 하는 부분이 나온다. 백강셍이 하나 내어주멍 이 강셍이 안앙 가당, 웨 나무 웨 리에 헹기수가 잇이메, 강셍이 노민 팡허연 들어가건, 니도 디 강셍이 랑 팡허게 들어가민 느 몸천 잇인디 가 진다. 경 허민 느 몸천, 그레 삼화혼정(三化魂情) 들엉 경 허연 느네 집이 앙 가라. 일러 주난”
<이용옥 심방 구술본>(제주학연구센터) 염라대왕이 강림에게 “흰 강아지 한 마리를 내어주며 이 강아지를 안고 가다 보면 한 그루 나무와 한 개의 다리에, 놋그릇에 담긴 물이 있으면, 그곳에 강아지를 놔두면 물 속으로 들어갈 것인데, 이때 강아지를 따라 함께 들어가면 네 몸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면 네 몸으로 혼이 들어갈 것이니 네 집을 찾아가라”라고 말하는 내용이다. 이 이야기에서 강림은 강아지가 이끄는 대로 따라와 이승으로 돌아오게 된다. 강아지(개)는 이승과 저승을 지키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고구려와 이웃했던 오환(烏桓) 사람들은 죽은 자들이 가는 성지(聖地) 적산(赤山)으로의 길을 개가 인도한다고 믿었다. “개를 살찌도록 길러 채색한 끈으로 묶어 끌고 가서, 망자가 타던 말과 옷, 물건, 생시에 쓰던 복식(服飾)과 함께 모두 불태워 전송한다. 특히 개를 묶는 것은 죽은 자의 신령(神靈)을 호위해 적산(赤山)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것이다. 이 죽은 자들이 가는 성지(聖地) 적산(赤山)으로의 길을 개가 인도한다고 믿었다.”
(肥養犬, 以采繩嬰牽, 幷取亡者所乘馬,衣物,生時服飾, 皆燒以送之. 特屬累犬, 使護死者神靈歸乎赤山.) 《삼국지》, 〈오환선비동이〉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오환선비동이(烏丸鮮卑東夷)〉 조에 보이는 내용이다. 내용을 보면 개를 망자와 함께 불태워 장례 지내는 것으로 죽은 자의 혼령을 호위하여 적산까지 인도하는 혼령 인도견으로서 역할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적산은 오환 사람들이 죽은 이의 넋이 간다고 믿는 신성한 산이다. 고구려 시대에 만들어진 <무용총(舞踊塚)>의 ‘가무배송도(歌舞陪送圖)’에는 말에 올라 춤과 노래로 배웅받는 주인 앞에 목줄을 두른 채 뒷다리로 앉고 앞다리는 세운 개 한 마리가 묘사되었다. 이 개 또한 주인의 저승길을 앞에서 인도하는 영혼 인도견으로 볼 수 있다. 아가리를 약간 벌려 송곳니를 드러내 위협적인 모습을 연출하는 것도 주인의 저승길을 안전하게 하려는 개의 의도와 관련 있다고 하겠다.
‘저승에 다녀온 이들’은 죽었으나 여러 이유로 다시 이승으로 돌아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죽었지만, 죽지 않은 살아 있는 상태로 저승에 다녀온 셈이다. 이들이 경험한 죽음은 ‘이승 안의 죽음’이면서 ‘현세의 죽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험은 가보지 못한 저승에 대한 두려움을 조금씩 해소하는 과정이면서 죽음보다는 현세의 삶을 더 중요시하는 삶의 태도를 드러내 보인다. 3. 죽어 이승에 간섭하는 이들 살아 있는 사람이 저승에 다녀온 이들이 있는가 하면, 죽어 저승에 있어야 할 이들이 이승으로 와서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에 간섭을 하기도 한다. 바로 귀신(鬼神)이다. 귀신은 귀물(鬼物)과 신물(神物)을 총칭하는 말이다. 귀물과 신물은 사람과 좋고, 나쁘고의 관계에 따라 분별되는 비현실적 존재를 이른다. 궂은 일을 일으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존재가 귀물이다. 반면에 사람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 행복하게 만드는 존재는 신물이다. 귀물, 곧 굿 것은 헛것이고, 신물, 곧 신령한 것은 성스러운 존재이기에 둘은 분별한다. 넓은 의미로 귀신은 신이 한 능력을 지닌 존재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좁은 의미로는 ‘사람이 죽어서 된 존재’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불교를 믿지 않던 경주에 살던 박생(朴生)이 꿈속에서 남염부주(炎浮洲 : 염라국)에 다녀온 후 크게 깨닫는다는 내용이 담긴 《금오신화(金鰲新話)》의 <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에는 귀신에 관해 다음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귀(鬼)는 음(陰)의 정기이고, 신(神)은 양(陽)의 정기이다. 대개 조화(造化)의 자취는 음기와 양기의 타고난 능력이다. 살아있으면 인물이라 하고, 죽으면 귀신이라고 하여 부르는 이름은 다르지만, 그 이치는 같다.”
(鬼者, 陰之靈, 神者, 陽之靈, 蓋造化之迹, 而二氣之良能也. 生則曰人物, 死則曰鬼神, 而其理則未嘗異也.) 《금오신화》, 〈남염부주지〉 중에서 조선 전기의 문인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귀신을 음양(陰陽)의 기운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 생(生)과 사(死)를 이원적으로 나누고 있지만, 그 이치는 같다고 하였다. 귀신 역시 인간과 마찬가지로 성질(性質)과 심정(心情)을 가지고 있는 존재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귀신이 이승에 관여하는 이유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람이 죽으면 정신과 기운이 모두 흩어져 하늘로 오르거나 땅으로 꺼져 그 근원으로 돌아가니 어찌 어두운 저승세계에 머물러 있을 수 있겠는가? 물론 원한을 품은 영혼이나 비명횡사한 귀신들이 제대로 죽지 못해 그 기를 펴지 못하여, 아무렇게나 묻힌 전쟁터나 모래밭에서 시끄럽게 울어대기도 하고, 자신이 목숨을 잃거나 원한 맺힌 집에서 구슬프게 우는 일이 간혹 있기도 하다. 이들은 무당에게 부탁하여 사정을 알리기도 하고 사람에게 의지하여 원한을 분명히 밝히고자 하기도 한다.”
(至於死, 則精氣已散, 升降還源, 那有復留於幽冥之內哉. 且寃懟之魂, 橫夭之鬼, 不得其死, 莫宣其氣, 嗸嗸於戰場黃沙之域, 啾啾於負命啣寃之家者, 間或有之, 或托巫以致款, 或依人以辨懟.) 《금오신화》, 〈남염부주지〉 중에서 사람은 죽으면 저승으로 건너가 신(神)으로 좌정하게 되고, 그곳에 머물게 된다. 그런데 저승으로 천도하지 못한 귀신은 이승을 맴돌면서 무당이나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의탁하여 자신의 원한을 해소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국가에서는 억울하게 죽은 이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의례를 행했다. 팔관회(八關會)도 그중 하나이다. “겨울 10월 20일에 전사한 사졸들을 위하여 서울 바깥의 사찰〔外寺〕에서 팔관연회(八關筵會)를 개최하여 7일 만에 마쳤다.”
(冬十月二十日, 爲戰死士卒, 設八關筵會於外寺, 七日罷.) 《삼국사기》 신라본기, 진흥왕 조.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있는 기록으로 신라 진흥왕(眞興王, 재위 540~576)이 전몰장병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572년(즉위 33년)에 팔관연회를 개설하였다는 내용이다. 이는 요즈음 현충일과 같은 국가기념식의 시원적 행사라 할 수 있다. 고려조에 와서도 팔관회는 계속되었지만, 점차 수륙재(水陸齋)로 대체되어 간다. 수륙재는 연등회(燃燈會)의 하나로 물과 육지에서 떠도는 외로운 영혼, 소위 삼재팔란(三災八亂)에 시달리다 죽은 사람들을 위무하는 불교 의식이다. 조선조 초에는 중국 칠사(七祀) 중 하나인 여제를 받아들인다. 여제(厲祭)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제사를 받을 수 없는 여귀(厲鬼)를 모시는 것으로, 사람에게 붙어 탈이 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제사를 모셨다. 《국조오례의서례(國朝五禮儀序例)》에 보면 여귀에 관해 14종의 횡사(橫死)를 열거하고 있다. “전진(戰陣)에 있다가 나라를 위해서 죽거나, 서로 싸우다가 목숨을 잃거나, 수화(水火)와 도적으로 죽거나, 기한(飢寒)과 질역(疾疫)에 걸리거나, 담과 집이 무너져 압사하거나, 벌레에게 쏘이고, 짐승에게 물리거나, 형벌을 받다가 죄 없이 죽거나, 재물 탓에 핍박당해 죽거나, 처첩(妻妾)으로 인해서 목숨을 잃거나, 위급해서 스스로 목매거나, 죽은 뒤에 자손이 없거나, 해산이 순조롭지 않아 죽거나, 벼락 맞아 죽거나, 떨어져서 죽거나 하는 일들이 헤아릴 수 없습니다.”
(或在戰陣而死國, 或遭鬪歐而亡軀, 或以水火·盜賊, 或罹飢寒·疾疫, 或爲墻屋之頹壓, 或遇蟲·獸之螫噬, 或陷刑辟而非罪, 或因財物而逼死, 或因妻妾而隕命, 或危急自縊, 或沒而無後, 或産難而死, 或震死, 或墜死, 若此之類, 不知其幾.) 《국조오례의서례》 권지일, 길례, 축판.
무속에서는 제명에 살다 가지 못한 모든 귀신을 잡귀 잡신으로 간주한다. 죽은 이의 영혼이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구천을 맴도는 원혼이 되면 인간에게 해를 끼칠 것으로 여긴다. 특히 사고사로 죽거나 미혼으로 죽으면 자기 한과 원을 풀어달라는 신호로 각종 흉사(凶事)를 전한다고 본다. 그래서 예전에는 처녀 귀신과 총각 귀신을 가장 무서워했으며, 흉한 일 당하지 않으려고 매장법도 달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울러 영혼결혼식을 통해 조상신으로 좌정하도록 만들려고 하였다.
원한(怨恨)을 가진 귀신은 자신이 한을 풀어주길 청하면서 사람들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삼경 의 홀연 일진음풍이 어조차 니르어 촉영이 명멸하고 찬기운이 의 사뭇더니 이윽고 방문이 스스로 열니며 홀처녜 일신의 피를 흘니고 몸을 드러고 머리 풀고 손의 불근 기를 들고 셤홀히 방의 드러오니.”
(삼경 때에 갑자기 음산한 바람이 어디선가 일어 촛불이 꺼졌다 켜졌다 하고, 차가운 기운이 뼈에 사뭇더니 이윽고 방문이 스스로 열리며 한 처녀 온몸에 피를 흘리며 몸을 드러내는데, 머리는 풀고, 소에는 붉은 기를 들고 방어 들어오니) <셜유원부인식쥬긔>, 《청구야담》 ‘귀신의 원한을 푼 것은 부인이 붉은 깃발을 알아봐서〔雪幽寃夫人識朱旗〕’라는 제목으로 《청구야담(靑邱野談》에 실려 있는 이야기이다. 소위 ‘아랑전설(阿娘傳說)’이라고 부르는 이 이야기는 ‘억울하게 죽은 아랑이 원령(怨靈)으로 나타났다가, 자신을 죽인 자를 잡아 처형하고, 주검을 찾아 장사를 지내주니 그 뒤로는 나타나지 않았다.’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원한을 가진 귀신이 이승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해원을 풀어주길 청하는 것으로, 죽어 저승에 온 이들이 살아 있는 사람의 삶에 간여하는 기본적인 형태의 이야기이다. 위의 이야기에 보면 귀신은 죽었을 때의 흉측한 모습 그대로 등장한다. 온몸에 피를 흘린 채 알몸으로 나타난 귀신은 인간에게 두려운 대상이 된다. 죽은 이는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길 바라는 처지에서 인간에게 나타나지만, 인간은 저승에 있어야 할 이를 만남으로써 뜻밖의 해(害)를 입게 된다. 즉, 귀신의 등장으로 죽음을 맞게 되는 뜻밖의 결과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살아 있는 사람의 처지에서 보면 죽은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만으로 불행해진 것이다. 이승의 삶에 관여하여 이들이 모두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때로 사람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쳐 행복하게 만드는 존재로 등장하기도 한다. “1등에 당첨된 A씨는 “얼마 전 꿈에 돌아가신 부모님이 나와 5만 원 2장을 주셨다. 조상꿈은 길몽이라고 들어 평소 즐겨 사던 스피또복권을 샀다. 복권은 내가 긁었는데 시력이 좋지 않아 남편에게 확인해보라고 하니 1등에 당첨됐다고 하더라.”면서 “5만원 2장을 받고 1등 5억에 당첨된 것 보니 올해 나의 행운의 숫자는 ‘5’인 것 같다.”고 당첨 소감을 밝혔다.”
<돌아가신 부모님 꿈꾸고 5억 복권 당첨>, 《국제신문》, 2015.01.21. 기사 돌아가신 부모님이 돈을 주는 꿈을 꾸고 복권에 당첨되었다는 내용이다. 꿈에 조상을 보고 복권을 사서 당첨되었다는 사람의 사연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들은 죽은 이들을 만나지만 그들을 원조자(援助者)라 여긴다. 자기 삶에 도움을 주는 존재로 여기는 것이다. 귀신을 직접 만나는가, 꿈에 만나는가에 따라 사람이 느끼는 공포감은 달라진다. 꿈은 이질적인 두 세계의 존재가 직접적으로 만나지 않기 때문에 상호 만남이 부담감이 없게 느껴진다. 악몽을 꾸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내용으로 보면 꿈은 좀 더 편안한 만남의 방편으로 이용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조상은 저승에 좌정하고 있는 신이고, 귀신은 저승에 좌정하지 못한 존재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승에 살아 있지 않은 존재가 이승의 삶에 관여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죽어 이승의 삶에 간섭하는 이들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때로는 귀(鬼)로 때로는 신(神)으로 작용한다. 인간이 귀신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귀신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위해자(危害者)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심으로 귀신을 달래고 위로하면 귀신이 위해를 멈추거나 오히려 인간을 도와주기도 한다. 결국 인간과 귀신의 만남은 해원(解冤)이나 퇴치(退治)라는 과정을 통해 귀신이 더 이상 이 세상에 간섭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하지만, 죽어 이승의 삶에 관여한 이들과의 만남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4. 이어져 있는 생(生)과 생(生) <전설 따라 삼천리>, <전설의 고향>은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 각각 장기간 방송된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이며 우리에게는 공포물로 강하게 인식되어 있는 드라마이다. 1965년에서 1983년까지 총 15년간 MBC에서 방송된 <전설 따라 삼천리>가 음향 기법을 통해 청취자들의 귀를 자극했다면, <전설의 고향>은 다양한 이미지를 통해 시청자들의 눈을 자극했다. 1977년 10월 18일부터 1989년 10월 3일까지 방송된 KBS TV 드라마 <전설의 고향>은 기이하고 괴기스러운 소재가 다수 채택되었고, 공포물 드라마로서의 특성이 강조되었다. 즉 귀신, 저승사자, 구미호와 같은 무섭고 괴이한 느낌의 캐릭터를 등장시키는가 하면 변신과 환생, 원한과 복수 등 공포감을 유발하기에 적합한 소재들이 다수 채택되었다. 특히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저승차사나 귀신, 귀물의 시각화로 단번에 시청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귀신이나 저승차사의 모습을 획일화하는 부작용도 나타난다. 한국형 귀신 하면 흔히 떠오르는 것이 소복 입고 머리를 풀어 헤친 원한 맺힌 여자 귀신인데, 이는 <전설의 고향>에서 전형화된 귀신의 형상이다. 그런데, 최근에 창작된 이야기에서는 귀신의 고정된 이미지가 조금씩 바뀌고 있다. ‘화재 사고 현장에서 여자아이를 구하고 죽음을 맞이한 ‘정의로운 망자이자 귀인’ 소방관 자홍, 그리고 그 앞에 나타난 저승차사 해원맥과 덕춘. 저승으로 가는 입구 초군문에서 그를 기다리는 저승차사 강림. 저승법에 따라 사후 49일 동안 일곱 번의 재판을 받는 자홍과 그를 돕는 차사들의 이야기. 2017년 12월 20일에 개봉한 한국 영화 《신과 함께-죄와 벌》(감독 : 김용화, 2017)의 뼈대이다.
이 영화에서는 죽은 이들뿐만 아니라 저승차사, 판관 등이 모두 사람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오히려 죽었을 때의 모습 그대로 등장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인간의 삶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 등 인간적인 감성을 담고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이승과 저승이 단절되지 않고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만화가 주호민(1981~)의 원작 웹툰 《신과 함께-저승 편》을 차용한 이 작품은 초반부에 “김자홍씨께선 오늘 예정대로 무사히 사망하셨습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대사를 던진다.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어떻게 잘 죽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은연중 제시하고 있는 대사라 할 수 있다. 과학의 시대라고 하는 지금도 여전히 이승과 저승을 오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전한다. 이 세상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더 나은 또 다른 생(生)의 삶이 결정되는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하루하루를 열심히, 그리고, 잘살아가야 할 일이다. 도움받은 자료
《三國史記》
《三國遺事》 《國朝五禮儀序例)》 《金鰲新話》 《正俗諺解》 《芝峯類說》 《靑邱野談》 김신정, 「죽음의 물잘성을 통해 본 죽음에 대한 인식체계연구」, 『구비문학연구』 제76집, 한국구비문학회, 2005. 나경수, 〈우리의 문화유산 속 굿과 귀신〉, 《(월간) 문화재》, 제407호, 한국문화재단, 2022. 문선영, 「전설에서 공포로, 한국적 공포물 드라마의 탄생」, 『우리문학연구』 제45집, 우리문학회, 2015. 박종오, 「한국의 귀신설화 연구」, 전남대학교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학위논문, 2008. 안병국, 「‘저승’ 관념에 관한 비교문학적 고찰」, 『한국사상과 문화』 26권, 한국사상문화학회, 2004. 전호태, 「고구려 고분벽화의 개」, 『한국고대사연구』 97, 한국고대사학회, 2020. 조현설, 〈굿것, 귀신과 괴물의 시대를 만나다〉, 《(월간) 문화재》, 제407호, 한국문화재단, 2022. 한정훈, 「죽음의 경험적 지식 구성과 이해」, 『민속연구』 37집, 안동대학교 민속학연구소, 2018. 《국제신문》(https://www.kookje.co.kr/) 《규장각원문검색서비스》(https://kyudb.snu.ac.kr/main.do) 《선데이 서울》(https://www.seoul.co.kr/) 《제주학연구센터》(http://www.jst.re.kr/main.do) 《한겨례》(https://www.hani.co.kr/) 《한국구비문학대계》(https://kdp.aks.ac.kr/inde/gubi) 글쓴이 박종오 전남대학교 호남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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